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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이 되고 싶은 후크 선장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 본문

독서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

후크 선장 2021. 4. 23. 22:02

오디오 북으로 몇 번이나 읽었는데 나중에 잊어버릴 것 같아서 적어둡니다. 

예전에는 책 링크도 첨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못찾겠으니 그냥 적습니다. 

이미지 출처: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196345

 

에리히 프롬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몇 년 전,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서입니다. 당시 느낌은 '퍽퍽하다..물 없이 건빵을 먹는 느낌이구만...' 한장 한장 넘길때 마다 뒷장이 얼마나 남았나 확인해보다 결국은 다 못읽고 덮었던 것 같아요.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나는 내 존재 자체보다는 지식의 소유에 집착하고 있구나. 이정도였어요.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읽어보렵니다. 

 그리고 다음 번에 읽었던 책이 "사랑의 기술"입니다. 이 책은 훨씬 읽기 수월했습니다. 몇 년 사이에 제가 확 늙어버려서 더 그런것 같기도 해요.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에서도 "사랑의 기술"에서도 에리히 프롬은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이라는 상품을 가판대에 올려놓고, 인격까지 팔아가며 살아간다구요. 흠칫 하고 놀랐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닳고 닳는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에리히 프롬이 말한게 바로 그거라서요. 

 저도 나름 제 인격을 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래 모습 그 대로 내놓으면 사회에서 저는 쓸모 없는 인간이 될 거라서 모난 성격을 갈고 또 갈고, 참고 또 참고 화를 내고 싶지만 웃으려고 하고, 그러고 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팔리지 않는 수많은 특성이 있는데 예를 들자면 예민함, 쓸데 없는 상상하기, 낙서하기, 오지랖 등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속한 업계에서는 이런 특성은 전혀 팔리지가 않는 특성이라서 쓸모가 없습니다. 씁쓸하긴 하지만요. 

 에리히 프롬이 직설적으로 딱 얘기를 해주니까 그런 것은 좋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것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지금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 책의 서론을 라이너 풍크가 썼는데 이사람 이름도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었는데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 조교(?)라고 뜹니다. 다른 사람이랑 헷갈렸나봐요. 아무튼 서론에 각 장을 짧게 요약해놨는데 그것만 읽는 것도 유익합니다. 

나중에 읽으려고 조금 요약해 둡니다. 

 

1장 인간은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한다. 

윤리는 모든 인간에게 항상 동일하다. 우리는 지난 세기의 윤리 문제를 되돌아보고 과거의 악덕과 죄를 바라보며 이제 악덕과 죄를 뛰어넘었다고 결론내리지만 실제로는 모습만 다를뿐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은 윤리 문제에 봉착해 있다. 

1) 권위주의 즉, 맹목적 복종의 요구 

합리적 권위와 비합리적 권위: 

비합리적인 권위는 공포와 감정적 복종에 바탕을 둔 압력 행사를 동반하며 맹목적 복종의 권위. 

합리적 권위는 능력과 지식에 근거하며 비판을 허용함. ex) 능력있는 의사를 찾아갈 경우 나는 그의 합리적 권위를 인정한다. 

공개적 권위, 익명의 권위: 

공개적 권위: "그렇게 하지 마라.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도 알잖니"--> 공개적이고 솔직함. 

익명의 권위: "엄마는 네가 그걸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단다." --> 관용과 양보의 외양을 띄고 있지만 게임의 규칙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대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잘 안다. 

우리는 무조건 공개적 권위를 택해야 한다. 공개적 권위는 대결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한다. 익명의 권위는 난공불락의 철벽이며, 게임 규칙이 드러나 있지 않아 감으로 느끼지만 확신할 근거는 없다. 

 오늘날의 익명의 권위는 시장, 여론, 남들과 다르지 않고 싶다는 소망, 무리에서 벗어나다가는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2) 착취 

 예전에는 식민지가 착취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사물의 생산이라는 한 가지 전능한 목표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자신을 사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생산하고, 점점 더 기계처럼 행동하는 인간을 제작한다. 인간이 사물이 된다면 자각하건 못하건 병이 들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 질병을 신경증이라 부른다.)권태, 삶이 무의미하다는 느낌, 풍요롭지만 아무 기쁨도 없는 삶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느낌 등) 

 새뮤얼 버틀러는 풍자 미래 소설 "에레혼(1872년)"에서 그것을 멋지게 표현했다. 그곳에서는 감기에 걸리면 우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우울하면 감기에 걸렸다고 말해야 한다. 

3) 불평등

19세기의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은 몇 세대만 지나면 철폐될 것이다. 그러나 평등은 이런 종류의 동등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마누엘 칸트의 말대로 모든 인간은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한에서 서로 평등하다는 의미다. 그 어떤 인간도 타인을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평등을 동일하다는 의미 서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강요가 없는데도 자발적으로 타인과 같아진다. 타인들과 순응하지 못하면 끔찍한 고독이 닥칠 것이며 집단에서 추방될 위험에 처할 것이라 느낀다. 

 

4) 탐욕 

예전에는 절약이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소비가 미덕이다. 우리는 영원한 소비자다. 우리는 엄청난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수동적 소비자이며, 젖병과 사과를 기다리는 영원한 신생앙다. 우리는 사물을 생산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조차 극도로 비생산적이다.

5) 반드시 타인과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 

19세기에는 "내 집은 내 성이다."(프로이트)라는 태도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반드시 타인과 함께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다. 소속감, 팀워크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실상은 자신과 혼자 있을 수 없는 무능력, 자신이나 이웃의 은둔을 참치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다. 

 

세상은 변했다. 19세기의 모든 악덕은 사라지면서 현재의 악덕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오늘날 우리가 해결해야할 윤리문제도 100년 전의 문제 못지 않게 심각하다. 

 

2장.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어..이후로 더 이상 요약을 못했네요. 

얼마 전에 읽었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나왔던 "질문을 살아가라"고 했던 문장이 떠오르는 2장인데, 내일은 꼬옥 마저 요약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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